쇼팽은 청소년기에 형성된 개성이 생애를 통해 변함이 없었던 인물이다.
그는 1837년 프랑스 시민권을 얻어 프랑스 시민이 되었고, 그의 주위에는 조르쥬 상드를 위시하여 위고, 뮈세, 하이네, 발자크, 드라크로아 등등의 일류 예술가들이 다채롭고 넓은 예술적 풍토를 보여주고 있었으나 한결같이 자신의 조국 폴란드의 민족감정을 강하게 지닌 향수(鄕愁)의 가인(歌人)이었다.
쇼팽을 파리에 클로즈업 시킨 리스트가 그를 가리켜 ‘건드리기만 하면 찢어질듯 한 안개 같은 나팔꽃’이라 표현했는데, 이 나팔꽃은 폴란드의 태양만을 향해서 피어있는 꽃이었다.
슈만이 쇼팽의 음악을 ‘꽃그늘 속의 대포’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함축적이라 할 수 있다.
1830년 크리스마스 이브, 쇼팽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친구인 얀 마투친스키(Jan Matuszynski)에게 절망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난 즐거운 표정을 짓고 살롱에 들어서야만 하네. 하지만 방으로 돌아오면, 이내 피아노에 내 감정을 쏟아내곤 하지. 빈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내 피아노에게…. 이렇게 가까스로 나는 내 감정을 드러내곤 한다네.” 러시아의 압제에 대항하여 폴란드의 봉기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오스트리아에까지 들려오자 쇼팽의 친구인 티투스 보이체초프스키(Titus Woyciechowski)는 폴란드 독립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빈을 떠났다. 이와는 달리 쇼팽은 예술적인 수단으로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작곡가 칼 뢰베(Karl Loewe)에 의해 가곡으로 불리워진 ‘에드워드(Edward)’처럼 쉽게 기억되고 감성적이며 대중적 스타일의 장르인 발라드를 선택한 것이다.
1831년 쇼팽은 파리로 이주하여 1836년 첫 번째 발라드를 출판했고, 리스트의 연인인 마리 다구(Marie d'Agoult) 백작 부인이 주최한 저녁 만찬에서 조르주 상드(Geroge Sand)를 소개받는다. 당시 그는 상드에게 매력을 느낀 바도 없었다. 이듬해까지 이 둘은 만나지도 않았다. 살롱 음악회의 연주자이자 스타로 숭배받았지만 자신의 명성에 대한 환상도 없었을 뿐더러 일종의 무대 공포증까지 있었던 쇼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슈만 앞에서 [발라드 1번]을 연주하여 천재의 작품임을 인정 받았다. 피아노를 위한 발라드가 세상에 그 탄생을 알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발라드 1번 Op.23 G Minor
슈톡하우젠 남작에게 헌정된 [발라드 1번]은 1835년에 완성되었으며 미츠키에비치의 시 ‘콘라드 월렌로드’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시의 내용을 보면, 술에 취한 월렌로드는 폴란드인 친구가 스페인의 압제에 맞선 무어인의 저항을 칭송하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월렌로드 역시 재앙을 몰고와 적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며 서로 투쟁을 벌인 뒤 장엄한 결말을 맞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듯한 이 작품은 음악평론가 제임스 후네커(James Huneker)로부터 “쇼팽 영혼의 오딧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작품은 장중한 서주에 이어 애조 띈 1주제와 화려한 2주제가 펼쳐지며 점점 우울하고 불길함을 더하는 한편 영웅적이며 화려하지만 비극적인 클라이막스로 치달아간다. 장대한 서사적 영혼이 몰락하는 듯한 격렬한 코다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자극적인 흥분과 도취적인 고양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쇼팽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찾아보기 힘들다.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평생토록 이 작품의 악마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이미지를 스펙타클하게 이끌어낸 최고의 연주자로 뭇 피아니스트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발라드 2번 Op.38 F Major
1836년에 작곡하여 1838년에 개정이 이루어진 발라드 2번은 [크라이슬레리아나]를 자신에게 헌정한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슈만에게 헌정했다. 이 작품은 미츠키에비치의 ‘윌리스의 호수’라는 시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러시아의 약탈에 황폐화된 폴란드의 어느 도시를 연상시키는 호수가 배경이다. 러시아의 압제에서 벗어나고자 도시의 젊은 여인들이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자 잔잔한 호숫가를 둘러싼 독을 품은 꽃들로 변해버리는 불가사의한 사건을 묘사한 내용이다. 이 작품 역시 섬세한 F장조와 보다 우울한 A단조가 전투적으로 대립을 벌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안단티노를 거친 뒤 갑자기 파도가 밀려오듯 전율적이고 분노에 찬 악절이 펼쳐지며 이내 발작적인 엑스타시를 터뜨리는 프레스토에 이른다. 한 작품에서 두 개의 상반된 자아가 등장하여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형식은 슈만의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과 많이 다르지 않은 듯이 보인다. 이렇게 쇼팽, 슈만과 같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소나타 형식을 벗어나 표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새로운 형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형식은 휴머니티에 대한 진정한 반영으로 평가받는다.
발라드 3번 Op.47 A flat Major
1841년에 작곡한 3번은 미츠키에비치의 ‘물의 요정’을 음악으로 변용한 작품으로서 쇼팽의 발라드 가운데 그나마 밝은 작품이다. 젊은 여인은 남자들의 진심을 믿지 못하여 물의 요정으로 모습을 바꾼다. 그녀는 젊은 남자를 유혹하여 알 수 없는 환상을 쫓다가 파멸하도록 이끈다. 평론가 후네커는 최면적이면서도 휘몰아치는 격정이 펼쳐지는 이 곡을 일컬어 “귀족적이고 명랑하며 우아한 동시에 자극적인 아이러니컬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발라드 4번 Op.52 F Minor
본질적으로 슬라브적인 기질을 머금고 있는 4번은 로쉴드 남작부인에게 헌정한 곡으로서 1842년에 완성했다. 피아노로 연주하는 모든 발라드 작품 가운데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다. 풍부하고 자유로우며 창조적일 뿐만 아니라 자아 성찰적 성격 또한 가지고 있다. 이 곡은 아버지가 담비를 잡으라고 내보낸 형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미츠키에비치의 ‘버드리의 세 형제’라는 시를 바탕으로 한다. 자식들이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는 형제가 전쟁에 휘말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형제들이 약탈당한 불모의 땅으로부터 신부를 데리고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평론가 후네커로부터 “불가항력적인 마법을 지녔다”고 평가받은 이 곡은 느리고 평화로우며 속삭이는 듯한 왈츠 리듬으로 시작한다. 점차 스케일이 확장되면서 대위법적 발전부에 의해 불안감이 증폭된다. 쇼팽 피아노 음악의 진정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이 정교하며 극적인 발라드는 바르카롤(barcaroll) 풍의 휴지부를 뒤로 하고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격정적인 테크닉과 온몸을 불사르는 듯한 뜨거운 열기가 휘몰아치는 코다를 펼쳐내며 클라이막스의 절정을 향해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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