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Toccata and Fugue in d minor는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첫 음이 울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음악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있다.
어둡고 장엄하며, 동시에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흐름.
이 작품은 단순한 곡이 아니라 하나의 음향 건축물에 가깝다.
그러나 이 곡을 다시 연주하거나 편곡하는 방식은 이미 충분히 많다.
이번 작업의 출발점은 그 지점이 아니었다.
“바흐를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바흐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즉흥에서 구조로
이 작품은 토카타적 제스처로 시작한다.
리듬은 자유롭고, 쉼표는 예측할 수 없으며,
마치 연주자가 즉석에서 공간을 탐색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 자유는 결코 방임이 아니다.
바흐의 토카타가 그러하듯,
이 자유는 결국 구조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준비 상태에 가깝다.
시간이 흐르며 음악은 점점 중심을 찾고,
동기는 반복되고, 겹쳐지며,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 간다.
푸가적 사고란 단지 대위법적 기교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소리는 서로 관계 맺으며 존재한다”는 믿음에 가깝다.
이 작품의 중반 이후는 바로 그 믿음을 따라간다.
오르간이라는 공간
오르간은 악기이면서 동시에 공간이다.
하나의 음이 아니라, 공간 전체가 울린다.
그래서 오르간 음악을 듣고 있으면
소리를 ‘듣는다’기보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번 작품에서 오르간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음역과 밀도, 레지스트레이션의 변화로
천천히 무게를 쌓아 올린다.
이는 화려함보다는 불가피성에 가까운 접근이다.
마치 거대한 건축물이
장식이 아니라 구조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것처럼.
AI와 작곡, 그리고 질문
이 작품은 AI를 작곡의 도구로 활용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AI가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무엇을 기억하게 하고, 무엇을 남겨두지 않았는가이다.
바흐의 멜로디는 남겨두지 않았다.
화성 진행도, 주제도 그대로 가져오지 않았다.
대신 남겨둔 것은
그가 음악을 통해 보여주었던 사고 방식,
혼돈을 질서로 이끄는 태도,
그리고 음악을 하나의 구조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래서 이 곡은 바흐를 흉내 내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묻는다.
바흐는 지금도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남은 것은 감각
결국 음악은 분석보다 먼저 감각에 닿는다.
이 곡을 들으며
“이건 바흐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떤 순간,
익숙하지 않은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질서와 무게를 느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THIS FEELS LIKE BACH.
그 느낌 하나로,
이 작업은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https://youtu.be/G5KwY0HlAaY?si=qvtTP-yPJck4drz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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