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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AI 음악 이야기

기다림을 작곡한다는 것 - O Come, O Come, Emmanuel에서 선율을 지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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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의 음악은 언제나 역설적이다. 아직 오지 않았음을 노래하면서도, 이미 도래한 것처럼 울린다. "O Come, O Come, Emmanuel"은 그 역설이 가장 또렷하게 새겨진 찬송이다. 그래서 이번 작업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내린 결정은 의외로 단순했다. 이 찬송가의 선율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의도적으로 지우겠다는 선택이었다.

이 선율은 이미 완결되어 있다. 한 음이라도 들리는 순간, 음악은 기다림이 아니라 기억이 된다. 청자는 더 이상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익숙한 과거로 이동한다. 나는 노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노래 이전의 상태, 곧 시간이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지점을 다루고 싶었다. 그래서 남긴 것은 멜로디가 아니라 구조였고, 가사가 아니라 호흡이었다.

이 모음곡은 여섯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크에서 시작해 초기 고전을 거쳐 시네마틱한 어법으로 확장되는 흐름은 음악사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기다림이 점점 넓어지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은유다. 바로크의 대위는 긴장을 만든다. 각 성부는 스스로 움직이지만 서로를 의식하며 질서를 형성한다. 초기 고전의 균형은 그 긴장을 풀어낸다. 음악은 숨을 고르고, 공간은 또렷해진다. 마지막에 이르러 시네마틱한 언어가 등장하는 것은 감정을 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시야를 확장하기 위해서다. 기다림이 개인의 내면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간과 풍경으로 퍼져 나가는 순간이다.

이 과정 어디에도 찬송가의 선율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흐름만이 남아 있다. 반복되는 화성, 미묘한 리듬의 이동, 음형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결. 그것들은 노래처럼 붙잡히지 않지만, 천천히 몸에 스며든다. 이 음악은 기억되기보다는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영상으로 교회나 성화를 사용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 대신 숲과 물, 설원과 하늘, 그리고 밤의 별을 배경으로 두었다. 자연은 가장 오래된 신학적 은유다. 말하지 않지만 드러내고, 가르치지 않지만 질문한다. 그 앞에서는 신앙과 비신앙의 구분도 잠시 옅어진다. 자연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다만 시간을 허락한다.

이 모음곡은 크리스마스를 설명하지 않는다. 등장인물도, 사건도, 결말도 없다. 탄생의 장면도, 환호의 합창도 부재한다. 대신 단 하나의 질문만을 남긴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어쩌면 대림절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그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음악은 집중해서 들어도 좋고, 켜 둔 채로 흘려보내도 괜찮다. 적극적인 감상도, 조용한 배경도 모두 허용한다. 중요한 것은 듣는 방식이 아니라, 그 음악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선율을 지운 것은 결핍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노래 대신, 기다림 자체를 작곡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5OO6_VER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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