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하는 것을 얻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윌리엄 유리의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진실과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편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그런 진실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이유를 찾아왔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관계가 어긋날 때, 목표에 다가서지 못할 때. 그때마다 나는 상황과 환경을 분석했고, 때로는 상대방의 잘못을 헤아렸다. "시간이 없어서", "여건이 안 돼서", "그 사람이 이해를 못 해서". 그렇게 우리는 늘 밖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것이 더 쉽고, 덜 아프니까.
하지만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진짜 문제는 대부분 안에 있었다. 두려움이 있었다. 실패할까 봐, 거절당할까 봐, 부족함이 드러날까 봐. 그래서 시작하지 못했고, 말하지 못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했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마다 '아직'이라는 변명 뒤에 숨었다.
완벽주의도 그랬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많은 것들이 '준비 중'인 채로 시간만 흘러갔다. 완벽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은 불완전한 내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발견된다. 우리는 타인을 바꾸려 하고, 상황을 원망하지만, 정작 타인도 상황도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반면 우리 자신은 바꿀 수 있다. 내 생각을, 내 행동을, 내 태도를. 그런데도 우리는 가장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만 바라보며 좌절한다. 마치 열쇠를 손에 쥐고도 문이 잠겼다고 불평하는 것처럼.
윌리엄 유리의 말이 주는 진짜 통찰은 여기에 있다. 문제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해결의 실마리도, 변화의 가능성도 모두 내 안에 있다는 뜻이니까. 상대방이 달라지길 기다릴 필요도, 상황이 좋아지길 바랄 필요도 없다. 내가 움직이면 된다. 내가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같은 상황이라도 내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면의 제약 때문이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완벽주의 때문에 기회를 놓쳤고,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먼저 나를 충분히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큰 적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밖을 탓하는 대신 안을 들여다보는 것. 변명 대신 변화를 선택하는 것. 회피 대신 직면을 택하는 것.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 방향만은 분명해졌다. 문제가 나 자신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유일하게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우리 자신이니까.
오늘, 나는 나 자신과 정직하게 마주하기로 한다. 불편하더라도, 아프더라도.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나 자신이라면, 그 장애물과 제대로 씨름해야 하니까. 그것이 진짜 성장이고, 진짜 자유다.
https://youtu.be/ZXx2OWAHWPM?si=WJhbNQOK_e0vZb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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