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usic Story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II

by 정마에Zeongmae 2018. 5. 4.
728x90
반응형


   레오폴드는 원래 법학을 공부하려고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잘츠부르크로 왔다. 그리고 학비를 벌기 위해서 그가 즐기던 바이올린 연주가 어느덧 본업이 되어 24살 때부터 잘츠부르크의 궁정 악사가 된 것이다.

   "여보,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 생겼어요?"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그의 아내 안나 마리아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올라왔다. 네 살 난 볼프강도 엄아의 치마폭에 매달려 올라와서 유달리 크고 푸른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았다.

   안나 마리아는 장크트 길겐이라는 호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네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잘츠부르크로 이사 와서 레오폴드를 만나게 된 평범한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시골 출신답게 생활력이 강해서 언제나 낙천적이었고, 유머로 집안에 웃음꽃을 피웠다.

   "이것 좀 봐. 글쎄 볼프강이 레지덴츠 광장의 종소리를 오선지 옮겼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레오폴트는 쳄발로 앞으로 가서 그 멜로디를 쳐서 들려 주었다.

   "어머! 정말 우리 볼프강이 그린 거에요? 우리 짐에 잘츠부르크의 언린 종이 생겼네!"

   마리아는 자랑스러운 듯이 볼프강을 덥석 안아서 높이 쳐들었다.

   모차르트는 정말 잘츠부르크를 전 유럽 아니 전 세계에 알리는 종이 되었다.

   네 살 때에 일찌감치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는 다섯 살에 피아노 소품은 무엇이나 연주했고 어떤 새로운 곡이던지 미뉴엣은 30분, 긴 작품이라도 한 시간이면 외워 버렸다. 그리고 일곱 살 때 작곡한 피아노 곡이 파리에서 출판되고, 교향곡 제1번이 여덟 살 때, 그리고 열두 살 때는 첫 오페라를 작곡했다.

   레노폴트는 이 신동과 역시 음악에 뛰어나 재능을 보인 그의 누나 난네를을 데리고 연주 여핼 길을 떠났다. 1762년 볼프강이 여섯 살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은 마리아 테레지아[각주:1]라는 역사상 이름 높은 여제가 다스리고 있었다. 자신이 소프라노 독창을 할 수 있었던 만큼 비상한 음악 애호가였던 여왕은 빈의 쉔브른궁에서 어린 모차르트의 연주를 듣고 그곳에 모인 귀족들과 외국 사신들에게 소개하며 칭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가족들


   여기서 모차르트의 앞길이 크게 열렸고 신동 모차르트에 대한 박수갈채는 전 유럽에 퍼져 나갔다. 이때가 모차르트의 전 생애 중 가장 득의만면한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런절런 경로로 볼 수 있는 어린 모차르트의 초상화는 이때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넓은 이마에 서글서글한 큰 눈이 빛나는 여섯 살의 모차르트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선물로 준 대례복을 입었는데 나폴레옹 처럼 황금빛 단을 두른 조끼에 왼손을 찌르고 고사리 같은 오른손은 허리를 짚으며 피아노 앞에 서 있다. 이렇게 마치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뽐내고 서있는 초상화는 보는 사람의 미소를 자아낸다.


 



 

2018/04/02 - [Music Story]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I



  공감과 댓글은 제게 힘을 줍니다~~ 

♥유튜브 구독도 부탁드립니다~♥





   



  1. 마리아 테레지아(독일어: Maria Theresia 마리아 테레지아, 헝가리어: Mária Terézia 마리어 테레지어, 체코어: Marie Teresie 마리에 테레시에, 1717년 5월 13일 ~ 1780년 11월 29일)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뵈멘, 만토바, 밀라노, 갈리치아와 로도메리아,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와 파르마등의 통치자였다. 결혼을 하면서 로렌 공작 부인이 되었으며, 후에 토스카나 대공비, 신성로마황후의 지위를 얻었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1713년 국사조칙에 의해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속녀로 공표되었으며, 카를 6세는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그의 사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이 되었으며, 영토들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카를 6세 사후 프로이센과 바이에른, 프랑스, 작센에서는 그녀의 계승에 반발하였고, 그 결과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이 발발하게 되지만, 프로이센에 슐레지엔을 내주는 대신 각 국으로부터 그녀의 승인을 인정받는다. 그녀는 후에 슐레지엔을 찾으려고, 7년 전쟁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녀는 로트링겐의 프란츠 슈테판과 혼인하였는데, 16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녀의 자녀들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제프 2세와 레오폴트 2세를 비롯하여서,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리의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 파르마의 공비 마리아 아말리아 등이 있다.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