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통일바라기축제 개막식 오프닝 무대에서 우리 합창단이 노래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부터가 통일바라기합창단이니, 이 무대에 서는 건 선택이 아니라 거의 운명 같은 일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팀을 위해 준비된 무대였던 셈이다.
아침 9시, 장남면주민자치센터에 모여 가볍게 목을 풀고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이동한 차 안에서도 마음은 이미 무대 위에 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무대 리허설을 시작하자마자, 예상 못한 문제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문제의 시작은 마이크였다. 야외에서 합창을 소화하려면 마이크 선택과 배치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한 문제다. 아무리 좋은 무지향성 마이크를 써도 야외의 수음 환경은 결코 만만하지 않은데, 오늘 준비된 마이크는 다름 아닌 유튜버들이 브이로그 찍을 때 쓰는 저가형 단일지향성 마이크였다. 한마디로, 합창과는 초면인 마이크였다.
게다가 합창단 전체의 소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내야 하는 상황인데, 그 마이크 단 세 개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다. 당연히 소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이 그날의 명대사였다.
“합창단 소리가 작아서 그래요. 좀 더 크게 부르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지휘자 머릿속의 오래된 직업병 스위치가 딸깍 켜졌다. ‘아니요, 합창은 크게 부르는 게 목적이 아닌데요…’ 마이크가 소리를 못 잡는 걸 성량 부족으로 진단해버리는 그 대담한 논리 앞에서, 나는 감탄과 한숨을 동시에 느꼈다.
합창에서 중요한 건 단순한 음량이 아니다. 소리의 크기만큼이나 중요한 게 밸런스, 음색, 발음, 그리고 각 성부 사이의 균형이다. 무조건 크게 부른다고 좋은 합창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좋은 합창은 작은 소리에서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오늘은 음향의 문제를 성량의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꽤 창의적인 오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속으로 조용히 한숨 한 번 쉬고 넘어가려던 참이었는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짜 점입가경은 그 다음이었다.
리허설이 한창인데 어디선가 농악대가 등장했다. 축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길놀음이라고 했다. 좋다, 축제니까 농악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우리 리허설과 정확히 동시에 시작됐다는 것. 한쪽에서는 합창단이 마이크 테스트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꽹과리와 북이 신명나게 울려댔다. 지휘자인 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리허설인가, 음향 전쟁인가?’ 심지어 어느 쪽이 이기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승자 없는 전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 내가 내린 결정은 단순했다.
“오늘은 합창 못 합니다.”
주변에서는 말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야 하지 않겠어요?”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이건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못 하는 것’이다. 단어 하나 차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노래하기 싫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노래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아침부터 두 시간을 달려 이곳까지 온 것 아니겠는가. 통일바라기합창단이라는 이름으로,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노래로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합창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조건에서 억지로 무대에 올라간다면 어땠을까. 객석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성부는 뭉개지고, 애써 다듬어온 표현들은 허공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오히려 합창단에게도 관객에게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음악은 ‘했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들렸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합창은 더 그렇다. 백 명이 목청을 높인다고 합창이 되는 게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작게 노래해도 호흡과 음정과 발음과 프레이징이 하나로 모이면, 그게 합창이다. 그래서 지휘자는 소리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소리를 하나의 음악으로 엮어내는 사람에 가깝다. 그런데 오늘은 그 음악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갖춰지지 않았다.
그래서 노래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아쉽고, 솔직히 조금 화도 났다. 아침부터 머리에 스팀도 꽤 올랐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답답했던 건, 우리가 정말로 노래하고 싶었다는 사실이었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노래하고 싶었는데,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는 걸, 오늘 아침의 작은 소동이 다시 한번 가르쳐 주었다.
좋은 음악은 좋은 의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무대에는 좋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때로는, 노래하지 않는 것이 음악을 지키는 가장 음악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오늘은 노래 대신, 조금 씁쓸하지만 그래도 피식 웃을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챙겨 돌아왔다. 마이크와 농악대의 협주곡이라니, 살면서 다시 만나기 어려운 조합이었다. 그래도 통일바라기합창단의 마음까지 멈춘 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노래하고 싶다. 다음에는 제대로 된 무대에서, 제대로 된 소리로, 마음껏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때는, 농악대와도 서로 존중하며 각자의 소리를 지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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