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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AI 음악 이야기

AI는 즉흥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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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획된 우연의 미학

음악은 늘 ‘순간’의 예술이었다.
즉흥(improvisation)은 그 순간의 감정, 공간의 울림, 청중의 숨결까지 모두 품어내며 존재한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AI는 즉흥할 수 있는가?

1. 즉흥의 본질 ― 인간의 ‘지금’

즉흥은 인간의 시간 감각에서 비롯된다.
연주자는 지금 이 자리에서 오직 자신만이 느끼는 내면의 충동과 호흡의 흐름을 바탕으로
한 번뿐인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 음악은 기록될 수 없고, 반복될 수 없으며, 단지 ‘지나간 순간’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가 즉흥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다.
즉흥은 ‘완성’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기 때문이다.

2. AI의 생성 ― 알고리즘의 ‘확률’

AI는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 대신,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학습하고,
그 확률적 경향을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겉으로 보면 즉흥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결정된 구조’가 숨어 있다.
AI는 결코 순간의 감정으로 연주하지 않으며,
과거의 확률을 바탕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계산할 뿐이다.
즉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정교한 수학적 예측이다.

3. 우연성 음악과의 만남

20세기 중반, 존 케이지(John Cage)는 음악에 ‘우연’을 도입했다.
그의 작품에서 소음, 침묵, 환경의 소리가 모두 음악이 되었다.
작곡가는 ‘통제’를 내려놓고,
세상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있는 그대로 수용했다.
AI 작곡은 이 전통과 닮아 있다.
작곡가는 프롬프트를 통해 의도를 제시하고,
AI는 그 결과를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반환한다.
그 결과는 작곡가의 통제 밖에서, 그러나 작곡가의 세계 안에서 존재한다.

4. 계획된 우연 ― 나의 자리

나는 AI를 즉흥의 대체자로 보지 않는다.
AI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우연’이지만,
그 우연은 나의 계획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주제와 방향을 설정하고,
AI는 그 틀 안에서 수많은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그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듬고,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음악은 다시 인간의 작품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내가 부르는 ‘계획된 우연(Designed Chance)’이다.
즉흥과 알고리즘의 경계에서,
나는 새로운 형태의 작곡을 발견한다.

5. 새로운 즉흥의 시대

AI는 즉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AI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즉흥할 수 있다.
AI의 결과물은
즉흥의 손끝에서 탄생한 소리가 아니라,
즉흥을 설계한 인간의 사유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이제 즉흥은 연주자의 손이 아니라,
창작자의 사고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되었다.

6. 〈Composing Dreams〉 ― ‘계획된 우연’의 실험

이러한 생각은 나의 프로젝트 〈Composing Dreams: Improvised Piano for Deep Rest〉로 이어졌다.
이 시리즈는 “깊은 휴식과 꿈을 위한 즉흥 피아노”라는 주제로 시작되었지만,
실제로는 인간과 AI가 함께 만든 우연의 조각들이다.
나는 음악의 방향, 질감, 감정의 온도를 계획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피아노가 흘러나온 선율과 화성은
AI가 만들어낸 예측 불가능한 우연이었다.
그 우연은 때로 내 의도를 넘어섰고,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이 태어났다.
나는 그 결과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즉흥으로 보이지만 즉흥이 아닌 음악’을 만들었다.
그것은 결국 AI의 즉흥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가 설계한 즉흥이었다.

“AI는 즉흥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AI를 통해 다시 즉흥할 수 있다.”

이 문장은 이제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내 작업의 중심이자 시대를 향한 선언처럼 느껴진다.
AI 시대의 즉흥은,
우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손끝에서가 아니라,
우연을 ‘의미로 전환할 줄 아는’ 인간의 마음에서 완성된다.

https://youtu.be/-6rshkx7m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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