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혜가 담긴 차, 복전차(茯磚茶) 이야기

 

차를 마실 때마다 우리는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를 함께 음미합니다. 수많은 차들 중에서도 유독 독특한 존재감을 지닌 차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전차(茯磚茶)입니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정작 마셔본 사람은 드물고, 알고 보면 더 낯선 이 차는 중국 후난성 안화 지역에서 탄생해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전통 흑차입니다.

낯설지만 오래된 이름, 복전차란 무엇인가

복전차의 기원은 1860년대 후난성 안화(安化)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증기로 찻잎을 쪄서 압축한 뒤, 마치 벽돌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저장하고 유통하기 위해 고안된 차였지요.

‘복(茯)’이라는 이름은 여름철 가장 더운 삼복(三伏) 날에 이 차를 가공하던 풍습에서 비롯되었고, ‘전(磚)’은 말 그대로 벽돌을 뜻합니다. 그래서 복전차는 문자 그대로 ‘여름철에 만든 벽돌 차’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호차(湖茶) 또는 경양전(涇陽磚)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복전차는 단순히 한 지역의 특산물이 아니라, 시대와 생활방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결과물입니다.

정성과 기다림이 빚어내는 특별한 제조 과정

복전차의 탄생은 단순히 찻잎을 말리는 과정이 아니라, 정성과 기다림이 어우러진 복잡한 공정에서 비롯됩니다.

먼저 ‘흑모차(黑毛茶)’라는 반제품을 만듭니다. 찻잎을 솥에 덖어 발효를 멈추는 살청(殺靑), 잎의 조직을 부드럽게 만드는 유념(揉捻), 쌓아 발효시키는 악퇴(渥堆), 그리고 건조 과정까지…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흑모차가 완성됩니다.

그 다음은 본격적인 복전차의 제작입니다. 흑모차를 체에 걸러 배합하는 병배사제(拼配篩製), 증기로 찐 뒤 쌓아두는 증기구퇴(蒸氣漚堆), 벽돌 모양으로 압축하는 압제정형(壓制定形), 마지막으로 복전차만의 비밀이라 불리는 발화건조(發花乾燥) 단계를 거쳐야 완전한 복전차가 만들어집니다.

복전차의 심장, 금화(金花)

복전차의 진정한 매력은 발화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이때 차 안에서 자라나는 노란 곰팡이가 있는데, 바로 ‘금화(金花)’라 불리는 미생물입니다. 이는 단순한 곰팡이가 아니라, 복전차의 맛과 향,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

특히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는 금화의 밀도와 번식 상태를 보고 복전차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금화가 많은 복전차일수록 더 높은 품질로 인정받는 것이지요. 마치 와인의 테루아르가 풍미를 결정하듯, 복전차에서는 금화가 품격을 결정합니다.

보이차와는 다른 매력, 복전차의 특징

흔히 흑차라고 하면 보이차를 떠올리지만, 복전차는 분명히 다릅니다. 보이차가 운남 대엽종 잎을 사용하는 데 반해, 복전차는 후난성의 찻잎을 사용합니다.

외형은 황갈색, 차를 우리면 붉은 기가 감도는 황색의 탕색이 나오며, 잎은 흑갈색으로 펼쳐집니다. 맛은 강하지 않고 부드럽고 순수하며, 오래 마셔도 부담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랜 세월 서민들이 일상 속에서 즐겨온 이유일 것입니다.

건강을 위한 한 잔, 복전차의 효능

복전차는 단순히 기호 음료를 넘어 생활 속의 지혜였습니다.

• 꾸준히 마시면 머리를 맑게 하고 갈증을 풀어주는 효과
• 기름진 음식을 먹은 뒤 소화를 돕고 느끼함을 없애주는 기능
• 전통적으로 알려진 헛배 부름, 설사, 기침 완화에의 도움
•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품질이 좋아지는 차라는 점

잘 보관된 복전차는 마치 숙성 와인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맛과 효능이 깊어집니다.

복전차, 이렇게 즐겨보세요

복전차는 두 가지 방식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1. 자차법(煮茶法) – 냄비에 넣고 끓여 마시는 전통적인 방법. 깊고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포차법(泡茶法) – 다관이나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내는 방법. 간단하면서도 깔끔한 풍미가 특징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첫 물에 한 번 씻어내는 세차(洗茶)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불순물이 제거되고 차 본연의 순수한 맛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래 두고 즐기는 법, 복전차 보관법

발효 긴압차인 복전차는 보관이 까다롭지 않습니다. 통풍이 잘되는 서늘한 곳에 두고, 포장지를 벗기지 않은 채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음에도 오랫동안 맛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복전차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마무리하며

복전차는 단순한 차가 아니라, 시간과 미생물이 빚어낸 하나의 예술품입니다. 처음 마시는 이들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그 속에는 깊이 있는 맛과 문화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오늘 하루, 한 잔의 복전차로 시간의 향기를 음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안에서 우리는 단순한 음료 이상의 위로와 지혜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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