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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성경 속의 음악

"지음을 받았으므로" — 찬양의 진짜 이유 [시편 148:1-5을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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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렬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찬양할찌어다 그의 모든 사자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찌어다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찌어다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찌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시148:1-5)


시편 148편을 읽다 보면 낯익은 찬양의 명령들이 쏟아진다. 하늘의 천사들에게, 해와 달과 별들에게, 심지어 하늘 위의 물들에게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부름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정작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찬양하라는 명령 자체가 아니라, 그 명령 뒤에 붙은 짧은 이유다.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찬양의 근거는 은혜가 아니라 창조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그분의 사랑, 그분의 은혜, 그분이 베풀어 주신 축복에서 찾는다. 물론 그것들도 찬양의 마땅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시편 148편이 말하는 찬양의 근거는 훨씬 더 근본적이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까닭은 단지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거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라거나, 뭔가 뜻하지 않게 덤으로 받은 은택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마땅히, 당연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짧은 구절이 담고 있는 신학적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선언이며, 나아가 만물이 존재하는 이유가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더 이상 해석의 여지가 없을 만큼 확고히 못박아 놓은 말씀이다.

존재 자체가 찬양의 이유가 된다


생각해보면 이는 참으로 놀라운 관점의 전환이다. 우리는 대개 무언가를 '받았을 때' 감사하고 찬양한다. 좋은 일이 생기거나, 기도가 응답되거나, 삶에 특별한 은혜가 임했을 때 비로소 찬양의 마음이 솟아난다. 그러나 시편 148편은 그런 조건적인 찬양을 넘어선다. 해와 달과 별들이 하나님께 무슨 특별한 축복을 받아서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 이미 찬양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지음을 받았다는 것,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곧 찬양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삶에 적용하면 어떤 의미가 될까.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오늘 특별히 좋은 일이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 자체 때문이다. 삶이 순탄할 때든 어려울 때든, 은혜가 넘칠 때든 메마르게 느껴질 때든, 우리의 존재 그 자체가 이미 찬양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편의 찬양 명령과 창조의 의도가 만나는 자리


그러므로 시편의 여러 말씀들이 곳곳에서 "만물이 주를 찬양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의도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찬양의 명령이 정확히 하나로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창조주께서 만물을 지으신 그 목적과, 성경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찬양의 부름이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의 흐름 안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귀한 말씀들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기껏해야 찬양시가 담고 있는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 정도로만 읽히고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존재의 이유이자 창조의 목적을 선언하는 이 말씀이, 그 무게에 맞는 만큼 우리 삶 속에서 깊이 새겨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 148편 앞에 다시 서 보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나는 오늘 무언가를 받았기 때문에 찬양하는가, 아니면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에 찬양하는가. 후자의 자리에 설 수 있다면, 찬양은 더 이상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적인 응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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