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북한강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를 나는 종종 찾는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도, 새로운 글을 시작하기 전에도, 때로는 그저 발길이 닿아 그 길을 걷는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걷기도 하고, 강물에 비치는 산수의 아름다움 앞에 한동안 말없이 서 있기도 한다.
바람이 지나가면 나뭇잎이 먼저 흔들리고, 그다음에야 강물이 잔잔한 물결로 대답한다. 나는 그 사이를 천천히 걷는다. 스치는 바람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찰랑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작은 감탄을 흘린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나면 어느새 복잡했던 생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 있다.
신기한 일이다. 책상 앞에서는 도무지 풀리지 않던 문장이 강변을 걷다 보면 저절로 이어지곤 한다. 억지로 답을 찾으려 애쓸 때보다, 자연 속에 자신을 가만히 맡길 때 생각은 오히려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아마 다산 선생도 이 강을 바라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유배라는 긴 시간을 견디면서도 그토록 많은 저술을 남길 수 있었던 힘은, 학문에 대한 의지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강과 산, 그리고 변함없이 흐르는 자연이 그의 마음을 붙들어 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견뎌낸 것은 유배지의 고독이 아니라, 그 고독 속에서도 흘러가기를 멈추지 않는 강물이 건네준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음악도 그렇다.
좋은 연주는 음표를 서두르지 않는다. 침묵이 필요한 곳에서는 충분히 머물고, 흐를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지휘자는 템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이 가장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사람이다. 강도 다르지 않다. 누구도 강물을 서두르게 하지 못한다. 강은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길을 따라 흐를 뿐이다.
강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도 조금은 강을 닮으면 좋겠다고. 목적지를 향해 쉬지 않고 달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놓쳤던 마음을 다시 만나고, 잊고 있던 질문을 다시 품게 된다.오늘도 북한강은 아무 말 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그 침묵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두르지 말라고, 흐르는 것에도 방향이 있고, 멈추어 바라보는 시간에도 의미가 있다고.
나는 오늘도 그 강가에서 하루를 하나 건져 올린다.
🎵 오늘의 추천 음악
클로드 드뷔시의 〈Rêverie〉.
물결처럼 이어지는 선율은 생각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북한강을 바라보며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풍경과 음악, 그리고 마음이 하나의 템포로 이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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