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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에세이: 《마음을 길어 올리다》 - 오늘도 음악이 말을 건다

반딧불은 자신의 빛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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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겼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연주를 마치고도 피곤하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무대를 내려와도 다음 연습을 이야기했고, 공연이 끝나면 또 다른 음악을 생각했다. 몸은 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지치지는 않았다.

이제는 다르다.

오늘도 오전부터 공연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리허설을 했다. 음향을 확인하고, 객석을 오가며 소리를 듣고,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췄다. 오후에는 내가 쓴 『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을 바탕으로 음악을 통해 소통과 학교폭력 예방, 그리고 평화를 이야기하는 콘서트 렉처(Concert Lecture)를 진행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또 다른 미팅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 온몸으로 피로가 밀려온다. 세월은 역시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의 이 피곤함은 조금도 싫지 않다.

몸은 무겁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가볍다. 강연 내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귀를 기울이던 학생들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음악 이야기에 웃고, 평화에 관한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던 그 모습은 강연자인 나에게도 큰 선물이었다.

누군가는 오늘 내가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돌아보면 오히려 내가 그 아이들에게 희망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오늘 연주한 곡 가운데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이 계속 귓가를 맴돈다. 앙상블로 편곡해 연주했던 그 선율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속에서 조용히 울린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참 오래 남는 가사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자신을 별과 비교한다. 그래서 별이 되지 못했다고 실망하고, 누군가보다 작다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긴다.

하지만 반딧불은 별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 작은 몸으로도 자신만의 빛을 낸다. 그 빛은 밤하늘을 가득 채우지는 못해도, 누군가의 발걸음을 비추기에는 충분하다.

생각해 보니 오늘 나 역시 그런 반딧불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의 마음에 얼마나 큰 울림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단 한 명이라도 오늘의 음악을 통해 친구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별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의 오늘을 밝히는 작은 반딧불이라면, 그것으로도 아름다운 삶이다.

그래서 오늘의 피곤함은 훈장처럼 느껴진다.

몸은 나이를 따라가지만,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빛은 나이와 함께 더 깊어진다.

오늘도 음악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크게 빛나려고 하지 말고, 오래 빛나는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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