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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에세이: 《마음을 길어 올리다》 - 오늘도 음악이 말을 건다

숲은 왜 베토벤을 부르는가 - 가평 잣향기수목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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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잣향기수목원을 걸었다.

숲은 언제나 말이 적다. 그러나 그 적은 말 속에는 도시가 하루 종일 쏟아내는 소음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키 큰 잣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나뭇잎들은 서로 부딪히며 작은 화음을 만들었다. 코끝에는 잣나무 특유의 알싸한 솔향이 스며들었는데, 그 향은 마치 이 숲의 낮은 저음부처럼 은은하게 깔려 있었다. 새들은 저마다의 리듬으로 시간을 알렸고, 이름 모를 풀벌레들은 낮은 음으로 그 화음의 바닥을 받쳐 주었다. 지휘자인 내 귀에는 그것이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들렸다.

문득 베토벤이 떠올랐다.

그는 도시보다 숲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빈 외곽의 숲길을 몇 시간씩 걸으며 머릿속에서 음악을 다듬었고, 악상이 떠오르면 급히 수첩을 꺼내 적었다가 다시 걸으며 그것을 이어 붙였다고 전해진다. 오늘 숲을 걸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아마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숲이 그의 음악을 만들어 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숲은 그의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음들을 제자리에 앉게 해 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영감을 무엇인가 새롭게 얻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보다, 이미 마음속에 있는 것을 질서 있게 정리하는 과정에 더 가깝다. 숲은 그 질서를 선물한다.

도시에서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휴대전화가 울리고, 자동차가 지나가고,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차례로 밀고 들어온다. 그러나 숲에서는 바람만이 말을 한다. 신기하게도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내 안의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린다.

그래서 베토벤은 숲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듣기 위해.

오늘 걸으며 나는 음악도 인생도 같은 원리를 따른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연주는 음을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소리를 덜어 내는 데서 시작된다. 좋은 삶도 해야 할 일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소음을 조금씩 줄여 가는 데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숲은 아무것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바람을 보내고, 나무를 세우고, 새를 노래하게 할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곳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온다.

오늘 잣향기수목원에서 내가 얻은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제자리를 찾는 평화였다. 어쩌면 베토벤도 그 평화를 악보 위에 옮겼기에, 2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남길 수 있었는지 모른다.

숲이 베토벤을 부르는 이유는, 그가 숲에서 위대한 선율을 얻어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 역시 잠시나마 그 목소리에 가까이 다가간 듯했다.

오늘도 음악은 악보보다 먼저 숲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오늘의 추천곡:

Symphony No. 6 'Pastoral', Op. 68
제1악장 — Erwachen heiterer Empfindungen bei der Ankunft auf dem Lande
(전원에 도착했을 때 일어나는 명랑한 감정의 깨어남)

숲을 걷는다는 것은 자연을 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듣는 일이다. 베토벤의 《전원》 1악장은 그 평온한 시작을 가장 아름답게 들려준다.

📱 QR코드를 스캔하면 바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지휘자의 한 줄
"베토벤은 숲의 소리를 작곡한 것이 아니라, 숲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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