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머니를 모시고 치과에 다녀왔다.
치과는 참 이상한 곳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가야 하지만, 누구도 기꺼이 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대기실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말수는 줄고, 시선은 바닥이나 벽 어딘가에 머문다. 아직 오지 않은 통증을 미리 상상하며 견디는 곳, 치과는 그런 공간이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대기실에는 오페라 아리아 한 곡이 낮게 흐르고 있었다. 어느 작품의 어떤 아리아였는지는 끝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음악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큰 소리로 위로하려 들지도,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공기 속에 스며들어, 조용히 곁에 있어 주었다.
어머니는 늘 그렇듯 말이 없으셨다. 접수처에서 이름을 부를 때마다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드셨다가, 다시 무릎 위의 손을 내려다보셨다. 나는 그 손을 오래 바라보았다. 주름진 손등 위로 아리아의 선율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밖에서는 날씨가 몇 번이나 얼굴을 바꾸었다. 햇빛이 비치다가도 금세 먹구름이 몰려왔고, 이내 빗방울이 떨어졌다. 변덕스러운 하늘과 달리, 병원 안은 놀랄 만큼 고요했다.
'위잉—'
스케일링 기계 소리, 평소라면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을 소리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 소리마저 낯설지 않았다. 오페라 선율 위에 살짝 얹힌 작은 타악기처럼, 거슬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 순간, 문득 알게 되었다.
음악은 현실을 없애주지 않는다. 치과의 통증을 사라지게 하지도, 불안을 완전히 씻어주지도 못한다. 다만 같은 현실을 조금 다른 마음으로 통과하게 해준다. 고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고통 곁에 평화를 나란히 놓아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음악이 건넬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위로일 것이다.
지휘를 하며 나는 오랫동안 음악을 '감정을 움직이는 예술'이라 말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음악은 감정을 움직이기 전에, 먼저 공간을 바꾼다는 것. 그리고 공간이 바뀌면, 그 안에 머무는 시간의 결도 함께 달라진다는 것.
같은 치과였지만, 음악이 흐르는 동안 그곳은 더 이상 두려움만 가득한 곳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시간이었고, 어머니의 손을 바라보는 시간이었고,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괜찮았어" 하고 짧게 말씀하셨다. 그 한마디에는 안도가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말이 오늘 들은 어떤 아리아보다도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치과'를 만난다. 피하고 싶은 자리, 긴장되는 만남,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들. 그 순간들을 모두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안에 작은 음악 하나쯤은 품을 수 있다.
오늘도, 음악이 그렇게 내게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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