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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페르소나

by 정마에Zeongmae 202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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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자는 악보 위에 묵묵히 잠들어 있는 음악에 반응하여, 복잡한 몸동작을 통해 음악이 우리 내부를 통과해 나가도록 응원한다. 사람들은 음악에 의상을 입힐 수도 있고 영상을 덧씌울 수도 있다. 음악에 노랫말이나 대사를 곁들일 수도 있고, 음악에 순응하거나 거역하는 춤사위를 붙일 수도 있다. 음악은 시각적 이미지에 찰싹 들러붙고 때로는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신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음악은 근본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이다. 

    지휘자들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신구(新舊) 걸작들 안의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소외와 연대의 신비, 그리고 각각의 양극단 사이에 놓인 모든 회색 음영을 불와전하게나마 탐험하는 존재다.  그들 작곡가가 모두 영웅인 건 아니었다. 아니, 심지어 위대한 인물이라고 칭할 만했던 이도 드물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정녕 누구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의미를 소리의 연쇄 안에 담고 소리의 모양을 구축하는 법을 알았던 이들이다.

    지휘자들의 행위는 '컨덕터conductor'라는 단어의 물리적 의미에 그대로 부합한다. 우리는 작곡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소리를 생산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에 힘입어 그 에너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에너지는 마치 전류처럼 우리 몸을 통과한다. 지휘를 하다 보면 귀에 들리는 것이 그보다 훨씬 큰 무언가의 작은 부분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우리를 빨아들이는 훌륭한 음악을 들으면 대번 알 수 있도, 흔히 그 가치는 단지 귀에 들리는 바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지휘자는 시간을 통제한다. 매 악절 내 음표들의 밀물과 썰물을 조절하는 것도,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것(같은 작품이라도 지휘자에 따라 연주 시간이 15퍼센트는 차이가 나기도 한다)도 모두 시간을 통제하는 일이다. 또한 우리는 연주자 그룹과 독주자들이 내는 모든 소리의 내부적 균형을 제어한다. 우리는 어떤 곡이건 시작 직전의 순간부터 그 끝(목적점)을 알고 있어야 하며, 그러면서도 아울러 연주의 굽이굽이 순간순간마다 변천과 수정이 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 지휘자들은 악단의 집단적 의지를 선도하며 동시에 이를 따라가는 존재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수의 협동에 힘입어 우리는 3분짜리 소품부터 바그너의 오페라처럼 네 시간 반을 넘는 작품까지 지휘해 나가는 것이다.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1 in F# minor, Op. 1 / Lugan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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