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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지휘자 멘델스존

by 정마에Zeongmae 2023.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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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음악사에는 작곡이라는 창작활동 외에도 연주나 음악교육과 같은 분야에서의 활약으로 한 번 더 그 중요성이 회자되는 작곡가들이 종종 등장한다. 펠릭스 멘델스존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로, 그의 지휘활동은 음악 작품과 더불어 많은 음악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의 지휘자로서의 생애를 살펴보는 것은 지휘의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났던 19세기 전반기의 단면을 직시하는데 도움이 되며, 더불어 19세기 독일의 음악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

Theodor Hildebrandt: Felix Mendelssohn Bartholdy, 1834


    멘델스존이 지휘자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1820년대~1840년대에 지휘라는 예술은 현대적인 모습으로 탄생되는 절차를 밟고 있었다. 19세기 초반까지도 지휘자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 들 중의 대표자가 전체 앙상블을 이끄는 것이 보편적인 관습이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악기주자 겸 지휘자(instrumentalist-conductor)로서, 주로 건반악기 주자나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악장이 그 역할을 도맡았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음악이 복잡하고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합창단이나,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이끌 수 있는 강력한 통솔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악기 주자와는 독립되는 전문 지휘자라는 존재가 음악회에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아갔으며, 지휘는 악기 연주와 겸할 수 없는 또 다른 특별한 기술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나타난 새로운 지휘자들은 통솔력을 더욱 강화하고 연주자들의 주의를 자신들의 제스처에 집중시키기 위해 바통(지휘봉)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바통 지휘자라 불렸다. 멘델스존은 이 바통을 공공음악회에 도입해 사용한 최초의 전문 바통 지휘자들 중 하나로, 19세기 전반의 새로운 지휘 문화를 선도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19세기 독일 음악 문화 부흥에 있어서의 지휘자 멘델스존의 역할은 그의 생전에 이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사망 직후 발간된 라이프치히의 음악 잡지 「음악 세계의 표상」(Signale für die Musikalische Welt)에서도 "멘델스존의 지휘자로서의 활동과 많은 장점들은 작곡가로서의 그의 작품들만큼 위대하다. 이곳(라이프치히)의 정기연주회들이 유럽 전역의 명성을 얻었음은 이를 증명한다. 바흐 작품의 부활도 일차적으로 그의 공헌이며, 베토벤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라고 평가된 바 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대부분의 시기동안 독일에 나타난 반유대주의와 정치 상황을 계기로 작곡가로서의 멘 델스존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면서, 그의 지휘자로서의 활약과 의의도 함께 간과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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