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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지식과 지혜를 찾아서

표현성에 관한 불일치

by 정마에Zeongmae 2024.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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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음악은 동양인에겐 서양인에게 들리는 것과는 다르게 들린다. 동양인에겐 서양 음악이 서양인에게처럼 들리지 않는다. 제수알도(Carlo Gesualdo, 17세기 이탈리아 작곡가)의 음악은 20세기에 조성의 붕괴를 경험한 우리들에겐 19세기 사람들이 들을 때와는 현저히 다르게 들린다. 




   음악이 어떻게 들리고 그림들이 어떻게 보이는 지를 놓고서 나타나는 차이에는 물론 수많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예술작품에 접근할 때 어떤 두드러진 점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것은 관심의 그늘 속으로 물러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듣고(listen for) 무엇인가를 찾는다(look for). 이는 어느 정도 개인적인 특이성의 문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면에서 다른 형식 전통은 다른 보기와 듣기 방식을 요구한다. 우리는 베베른(Anton Webern, 오스트리아 현대 음악가)에게서 브람스와는 다른 것을 들으려 한다. 우리는 폴록(Jackson Pollock, 20세기 미국 추상화가)에게서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초기 르네상스 화가)에게서와는 다른 것을 보려고 한다.

   화음 관계는 서양 클래식 음악에서 구조적으로 대부분의 동양 음악에서 어떤 분명한 짝을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런 구조적 차이는 다른 방식으로 들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다른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또한 우리가 보고 들었던 다른 예술작품들이기도 하다. 



▲ 폴록의 작품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



   엘리어트(T. S. Eliot)는 “전통과 개인적 재능(Tradition and the Individual Talent)”이라는 유명한 수필에서 전통을 여는 모든 새로운 시는 구조를 바꾼다고 지적했다. 흡사한 방식으로 과거에 보고 들은 것은 새롭게 보고 듣는 것에 대한 지각을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보고 듣는 것은 익숙한 것들에 대한 장래의 지각을 미묘하게 바꾸어 놓는다. 일단 독일 표현주의 작품들을 보게 되면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90년경 ~ 1576년)가 다르게 보인다. 베르크(Berg)를 한번 듣고 나면 바흐가 다르게 들린다. 일단 롱샹(Ronchamp) 성당을 보고 나면 피어첸하이리겐(Vierzehnheiligen)의 바로크 교회는 다르게 보인다.
- Nicholas Wolterstoff, Art in Action  중 


▲ 롱샹(Ronchamp) 성당



▲ 피어첸하이리겐(Vierzehnheiligen)의 바로크 교회



  오늘도 책장을 넘기며 나의 예술에 대한 사고를 더해 간다. 무엇을 볼 것이며, 또 그것들이 가진 어떤 것들을 인지하고 그 다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나의 편견이 배재된 오로지 작곡가의 예술혼만이 느껴지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청중이 오롯이 작품이 가진 고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자연스러운 에너지의 전달만이 참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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