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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

혜진이의 중앙음악콩쿠르

by 정마에Zeongmae 2018.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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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아끼는 바이올리니스트 김혜진(서울예고 3)이 2018 중앙음악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3위에 입상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근 1개월을 많이 아파했다고 엄마로부터 응원을 부탁한다는 메시지가 오늘 아침 제게 왔어요. 

   올 3월 내내 고생했는데 우승을 놓친 것이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같습니다.

   '노는게 불안할 정도로 열심히 살긴 하는데 늘 아쉽고 허전하다'는 아이, 예체능은 1등만 기억하는 분야인지라 1등놓치면 베개가 눈물범벅되곤 하는 여린 아이가 많이 안쓰럽습니다.

   성장의  과정이겠죠? 여러분의 응원 부탁드려요~


바이올린니스트 김혜진


   올해로 44회를 맞은 중앙음악콩쿠르는 1975년 중앙일보 창간 10주년을 기념하여 제정되었습니다. 올해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작곡, 성악남여 부분으로 개최되었습니다. 과거 작곡가 강석희베이스 연광철피아니스트 김대진소프라노 조수미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등의 빼어난 음악가들이 중앙음악콩쿠르에서 상을 받은 음악가들 입니다.


2018 중앙음악콩쿠르 시상식 (c)김순석, 중앙일보 기사 발췌





   김혜진이 연주한 본선곡은 Béla Bartók(벨라 바르톡, 1881 - 1945)의  Violin Concerto No. 2, Sz.112이었습니다. 

   바르톡은 헝가리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로 동시대의 작곡가 코다이 졸탄(Kodály Zoltán, 1882-1967)와 함께 중앙유럽과 발칸반도, 터키 일대의 민요를 수집하고 정리한 음악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늘날  루마니아의 슨니콜라우 마레(Sânnicolau Mare)에서 태어나 부다페스트 왕립음악원에서 음악 공부을 했습니다. 이때 만난 졸탄 코다이와 자신의 음악에 영향을 주게되는 민요 수집을 시작하면서 프란츠 리스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집시 멜로디로 생각했던 헝가리 민요에 대한 정체성을 알게 되며 이때부터 민요적인 색채가 드러나도록 작품을 쓰기 시작하게 되며,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1907년 왕립음악학원에서 피아노 교수직을 맡아 정착하면서 1908년 민요의 영향을 받은 『현악 사중주 제1번(String Quartet No. 1, Op.7, Sz. 40, BB 52)』과 1911년에 작곡과 대본을 완성했던 유일한 1막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A kékszakállú herceg vára)』, 1914년에서 1916년사이에 작곡한 발레곡 『허수아비 왕자(A fából faragott királyfi, Op. 13, Sz. 60)』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명해보면 밝은 영광보다는 어두운 좌절, 고독이 훨씬 더 많았던 사람이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심하게 아팠고 7세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에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루빈스타인 피아노 콩쿨에 피아노와 작곡의 2개 부문에 출전했으나 그 이름도 유명한 빌헬름 박하우스에게 1등을 빼앗겼고 작곡 부문에서도 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훗날 미국으로 망명하여 이름을 날렸으나 라흐마니노프,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등의 미국 망명 작곡가들에 비할 것은 못되었고 평생을 어둠 속에서 고독한 투쟁을 하며 큰 명성과 빛을 보지 못하고 64세의 나이에 병사하고 말죠. 

   바르톡은 어려서부터 신체적으로 병약했고 가정환경도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그의 삶은 대단히 고독한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그가 생각하는 인생, 세상이란 밝은 면보다 어둡고 불행한 것이 훨씬 더 많이 보였을 거에요.이런 그의 삶은 그의 인생관을 대단히 염세주의적으로 만들었어요. 이런 그의 철학과 사상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음악세계를 만들게 되는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음악에서는 베토벤, 브람스, 말러 등의 음악과는 또 다른차원의 어두움이 느껴지죠.


   바르톡은 두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어요. 이 중에서 1번은 그의 사후에야 발견되었고 2번 협주곡이 유명한데 시벨리우스, 쇼스타코비치 등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20세기에 만들어진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됩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은 둘째 아들 페테르를 위해 작곡한 '미크로코스모스'가 완성된 1937년 여름부터 이 '바이올린협주곡'의 작곡에 착수하여 1938년에 완성했습니다. 그가 총보에 적은 것에 의하면, 1937년 8월에 착수하여 1938년 12월 완성으로 되어 있는데, 곡은 의뢰자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졸탄 세케이(Zoltán Székely, 1902-2001)에게 헌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939년 4월 23일에 멩겔베르크의 지휘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관현악단에 의해 초연되었죠. 

   이 곡은 고도의 기교 보다는 졸탄 세케이의 요구 사항인 3악장 구성의 협주곡과 벨라 바르톡이 제안한 변주곡형식이 믹싱된 거대한 변주곡 작품이에요. 마자르풍의 선율로 문을 여는 1악장에 이어 바이올린으로 제시되는 리디안선법(Lydian mode)과 6개의 변주가 따르는 2악장과 1악장을 빠르게 변주한 3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협주곡의 구성은  1악장. Allegro non troppo - 2악장. Andante tranquillo - 3악장. Allegro molto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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