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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사티4

사티와 작품 작품 하나를 쓰기 전에 나는 혼자서 그 주위를 여러 번 돌아본다. 1913년 음악출판사 E. 드메의 회보에 사티의 작품 목록과 함께 실린 작곡가 소개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이다. 글 첫머리에서는 사티가 "친구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라며 "나는 근시로 태어났는데, 마음은 노안이다. 교만에서 도망쳐라. 그것은 모든 악덕 가운데 변비를 가장 쉽게 일으킨다. 나를 보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은 혀가 검어지고 귀는 망가지기를"이라는, 몽마르트르 시절의 사티가 했을 법한 말이 나온다. 음악 작품의 주위를 빙빙 돌다니...... 음악을 마치 회화나 조각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회화와 사티의 관계에 대해서는 1988년 길모어가 주로 '장미십자회' 시절에 만들어진 사티의 작품에서 '황금분할' 원리를 발견한 뒤로 사티가 회화의 .. 2023. 12. 18.
세기말의 반항아 에릭 사티 평생 검정 벨벳 양복, 검은 우산, 검은 모자 차림으로 몽마르뜨르 언덕을 거닐며 동네 아이들에게 ‘가난뱅이 아저씨’라고 놀림 받았던 에릭 사티(1866-1925). 그는 ‘음악가’라는 명칭 대신에 ‘소리를 섬세하게 측정하는 기술자, 음파 측정가’라고 불리기를 원했습니다. 사티는 6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아버지는 곧 피아노 교사인 계모와 재혼합니다. 계모의 강압적인 음악교육과 파리음악원 선생님들로부터 ‘음악원에서 제일 게으르고 형편없는 실력을 가진 학생’이라는 평을 듣고 음악에 흥미를 잃고 군대에 입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몇 달 후 고의적으로 옮은 기관지염으로 제대하게 되죠. 에릭 사티는 세기말의 반항아로 살다 간 괴짜였습니다. 그는 낭만주의나 인상주의에 반대하여 감정의 표출.. 2023. 2. 28.
에릭 사티의 작곡료 여러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에서 배경음악으로 많이 쓰이는 《짐노페니 Gymnopedie》의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의 신조는 빈곤이었습니다. 풍족한 생활을 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삶의 모토로 삼았던 그는 돈을 싫어했고,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멸했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사티의 피아노 곡에 대해 상당한 작곡료를 사례로 표시했을 때, 그는 자기를 모욕하는 행동이라고 화를 냈습니다. 작곡료에 대한 교섭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와 전혀 반대로 금액은 점점 내려갔습니다. 그리하여 거의 푼돈이 되었을 때, 사티는 비로소 안심이 되어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고 합니다. 2021. 2. 24.
에릭 사티 사티(Erik Satie, 1866~1925)는 드뷔시와 가깝게 지냈던 프랑스 작곡가이다. 그는 풍부한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풍자와 별난 것을 유난히도 즐기는 사티의 면모는 작품의 제목들에도 나타난다. 예를들어 과일의 우스꽝스런 모양을 보고 묘사하려고 한 《배의 모양에서 발견된 세 편의 곡》(Trois morceaux en forme de poire, 1890)이라든지, 가볍고 명랑한 분위기의 발레음악 《퍼레이드》(Parade, 1917) 등은 간결하고 명료한 그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2019.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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