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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후데3

북스테후데 : 전주곡, 푸가와 치아코나 C장조(Prelude, fugue & ciacona in C major)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년 경 ~ 1707년)는 바로크 시대 북부 독일의 작곡가이며 오르가니스트로 당대 제일의 음악가였다. 출생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아버지 요하네스가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었던 헬싱보리(그 당시 덴마크령)에서 태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1668년이래 북부 독일의 자유도시 뤼벡에서 성 마리아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였다. 이 교회의 성능이 좋은 큰 오르간으로, 그는 환상에 가득 찬 장려한 오르간 곡을 작곡하였고, 그 양식은 젊은 바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1668년부터 또 일종의 교회 연주회인 '저녁의 음악'(독일어: Abendmusik)을 번성하게 하여. 이것이 뤼벡의 명물이 되었다. 그는 이 '저녁의 음악회'로 개인적인 명성.. 2022. 5. 13.
바흐의 음악 양식 바흐는 오페라를 제외한 당시의 거의 모든 음악의 영역에 손을 댔으며, 초기에서 만년네 이르는 약 50년 동안네 양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도 현저한 발전을 보였기 때문에 긍의 음악 양식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양식의 발전 방향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대강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바흐의 음악사상(音樂史上)의 위치라는 점에 관해서는 바로크 음악을 종합한 종결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종합은 여러 가지 양식을 병렬시키거나 혼합시킨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그의 위대한 개성 속에서 완전히 소화시키고 용해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해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음악사가(音樂史家)인 만프레드 부코프저가 말했듯이 그것은 '여러 국민 양식의 융합 Fusio.. 2021. 2. 17.
서양 음악의 아버지, 바흐 II 아른슈타트에서의 바흐는 그야말로 다감한 청춘을 보낸 것 같습니다. 악평이 나있는 성가대원 가이어스바흐와의 격투나, 여인의 출입을 금하는 교회 성가대석에 낯선 여인을 입장시킨 것 등 화제가 적지 않았습니다. 1705년 말 바흐는 뤼벡에서 오르간의 대가인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 ~ 1707)가 연주회를 연다는 이야기를 듣고 1개월의 휴가를 얻어 도보로 80Km를 걸어 배우기도 하고 연주회를 감상했다고 합니다. 꿈과 같은 뤼벡에서의 4개월은 바흐에게 있어서 커다란 수확이었으나 휴가를 3개월이나 넘긴 그는 직무태만으로 교회에서 질책을 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합창 반주를 아무렇게나 했다고 비난을 받은 바도 있었습니다. 북스테후데의 호방한 작풍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는 유명한 《토카.. 2020.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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