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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4

지휘의 역사 1 지휘자가 직접 지휘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선 뒤부터였다. 그 이전의 지휘 활동은 분명한 방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고, 합창이나 합주의 통일을 꾀하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임시로 택했을 뿐이었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합창을 발장단으로 지휘하거나 중세에는 교회 합창단의 수석 가수가 손뼉 박자를 치기도 했다. 그 손뼉 박자 대신에 손동작으로 속도나 박자를 지시하게 되고 문예부흥기의 다성음악 전성기에는 악보를 말아 쥐고 박자를 쳤고 또 마루를 두들겨 박자를 맞추었다.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기악의 발달과 함께 합주가 많아지면서 그것을 통일하기 위해 하프시코드의 통주저음이 깔렸는데 교회에서의 오르간과 같은 작용으로 지휘의 역할을 했다. 또 통주저음 대신 기다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들겨 지휘를 한 일도.. 2023. 12. 24.
베버의 어린시절 독일의 로맨틱 오페라의 창시자이며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쩨와는 사촌간인 베버(Carl Maria von Weber)는 1786년 11월 18일에 독일의 올덴부르크에서 태어났는데, 베토벤이 고향인 본에서 소년 음악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무렵이었고, 모차르트가 아직 살아 있어서 빈에서 화려하게 활약을 하고 있던 때이다. 베버의 집안은 가명에 폰이 붙어 있는 것으로도 분명하듯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로부터 남작의 칭호를 받은 오스트리아의 지주인 요한 밥티스트 폰 베버를 선조로 하는 귀족집안으로, 그의 아버지인 작곡가 프란츠 안톤(1734~1812)도 남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베버의 아버지는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도 신동으로 만들고자 일찍부터 음악을 가르쳤다. 그러나 .. 2020. 10. 7.
오베론 – 요정과 인간의 세계 자신의 단점을 충분히 깨닫고 있는 이상자신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자기 자신을 주의깊게 지켜보는 이상예술이 자신을 위해 개척해 주는 길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Carl Maria von Weber (1786~1826) 피아노곡 「무도에의 권유」 Op.65와 가극 「마탄의 사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의 오페라 「오베론」은 베버 특유의 오케스트레이션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이 오페라는 바그너가 시도한 음악극의 길을 미리 보여준 중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베버는 이 작품을 영국으로부터 의뢰받아 작곡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베론」을 작곡하는 동안 유치한 대본에 잘 알지도 못하는 영국의 대본작가와의 공동 작업을 강요받았을 뿐 아니라 작곡료를 받.. 2019. 3. 2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V 모차르트가 신동이라는 대례복을 벗었을 때, 세상은 그에게 너무나도 냉정했다. 우리가 이탈리아에 갈 수 있도록 힘을 다해 주세요. 저의 가장 큰 열망이 오페라를 작곡하는 것임은 잘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빨리 회답을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오페라를 쓰고 싶다는 저의 소망을 잊지 말아주세요. 오페라를 쓰는 사람은 어떤 이를 막론하고 부러워집니다. 아리아를 듣거나 오페라를 볼 때마다 슬퍼서 울고 싶어요...... 이 편지는 1775년 모차르트가 만하임에서 아버지께 보낸 것인데, 이 편지의 서두에 이탈리아로 보내 달라고 조르는 것이 내가 아니고 우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음악 여행이라기 보다는 취직을 위해 떠났던 열아홉 살의 모차르트는 그 당시에 유럽 제일의 오케스트라가 있고 .. 2018.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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