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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by 정마에Zeongmae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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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탄생은 당시 헝가리의 독재 정권과 음악 활동에 제한하던 공산 국가의 엄격한 관료주의를 생각하면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다. 오케스트라는 1983년 이반 피셔와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졸탄 코치슈가 창립했다. 나중에 창조성을 둘러싼 끊임없는 불화로 코치슈가 물러나면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피셔가 홀로 통제하게 되었다.

지휘자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두 사람은 음악적으로 제도적으로 이상적인 단체를 만들고자 했다. 단서는 '페스티벌'이라는 말에 있다. 이들은 헝가리 국립문화재단 같은 거대한 공산주의 관료 조직에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음악 단체를 구상했다. 해마다 몇 차례 공연을 열기 위해 두 사람은 헝가리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들을 불러 모아 앙상블을 조직했다. 전적으로 사비로 운영했고, 대신 연주자들은 오케스트라의 일반적인 권리를 갖지 못했다. 사실상 음악회를 위해 모인 호화 선발 악단이었으므로 다른 풀타임 오케스트라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연주자 노조나 대표 위원회가 필요 없었다.

    문제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그 자체로 너무도 성공했다는 점이다. 뛰어나 연주로 찬사를 받으며 일약 헝가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단체로 떠올랐다. 피셔와 코치슈가 개인적으로 벌이는 음악적 모험에 대해 정권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살아남았다.

    독립적인 기관으로서 상징적 역할을 하고 정치적 자유를 앞서 내다본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1992년부터 완전한 독립 체제를 이루면서 헝가리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큰 문제가 있었다.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상설 악단이 아니었다. 임시로 꾸린 악단을 상설 조직으로 바꾸고 도시의 핵심 오케스트라로 키우려면 국가의 예산이 필요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해 앙상블의 문화가 바뀐다는 사실이었다. 헝가리의 다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연주자들이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위해 보일 때는 뭔가 특별한 일을 한다는 흥분이 있지만, 정기적으로 음악회를 여는 오케스트라가 되면 다른 일들은 접고 피셔와의 음악 작업에 집중해야 했다.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면, 여기에는 음악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이 오케스트라에는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개념이 없다. 연주자들은 2년 단위로 재계약을 맺는데, 지휘자의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위원회도 노조도 없다. 창립 단원들이 민주적 투표로 결정한 사항이다.

    그들은 고정된 일자리를 포기한 대신 연주의 높은 질과 경쟁을 원했다. 오로지 음악과 연주의 질만이 중요한 오케스트라를 원했다. 연주자들도 조언을 한다. 예술적인 면이라든가 단원 선정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지휘자에게 있다. 하지만 사실상 해고는 없었다. 이런 운영 시스템을 통해 연주자들은 스스로 동기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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