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후난성 중부에 자리한 안화현은 산봉우리가 연이어 솟아오르고 안개가 자욱하게 낀 곳이다. 강물이 땅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이곳은 예로부터 검은 차, 즉 흑차로 유명한 고장이었다.
1972년 창사의 마왕퇴 한나라 무덤에서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검은 알갱이 모양의 차 상자가 출토된 것이다. 전문가들이 확인한 결과, 이것은 안화 흑차였다. 안화 흑차의 역사는 그렇게 무려 2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문헌 기록으로는 1400년 전 당나라 시대의 '거강 박편'이라는 차가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당시 문헌에는 쯔강 강변에서 '양단차'와 '거강박편차'가 생산되어 수도 장안까지 운반되었다고 적혀 있다. 오대 시기의 기록에는 이 차의 색이 철처럼 검고 향이 독특하다고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고급 흑차의 특징이다.
당나라 때부터 안화 흑차는 황실에 바치는 공차가 되었다.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그 지위가 더욱 확고해졌다. 조정은 안화에 쌀과 소금, 천을 차로 바꾸는 공식 시장을 열었다. 당시 북송은 전쟁이 잦아 군마가 부족했는데, 북서부 지역에서는 차를 말과 바꾸는 거래가 활발했다. 이때 '차 상군'이라는 특별한 부대가 생겨났다. 조정은 이들을 안화에 보내 흑차를 받아 북서쪽으로 보내 군마와 교환했다. 이른바 '차마 교역'이 송나라 때 크게 발전한 것이다.

13세기 중반 칭기즈칸이 유라시아를 정복할 수 있었던 데는 세 가지 비결이 있었다고 한다. 강력한 기병과 뛰어난 지도력, 그리고 안화 흑차다. 칭기즈칸의 군대가 북쪽 초원에서 남쪽 강남 지역으로 내려왔을 때 많은 병사들이 물과 음식이 맞지 않아 설사로 고생했다. 군의관이 안화의 깊은 산속 농가에서 발견한 마른 식물을 따뜻한 물에 우려 마시게 했더니 증상이 금세 사라졌다. 그것이 바로 안화 흑차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명나라 주원장 시대에도 안화는 매년 22근의 차를 조정에 바쳤다. 차마 교역은 계속되었고, 호부는 각 차 생산지에 관리 기관을 두어 차와 말의 거래를 감독했다. 완력 시대에 명나라가 한때 차 무역을 중단하려 하자 북쪽의 몽골과 여진 부족이 크게 반발했다. 결국 3년간의 전쟁까지 벌어진 끝에 명나라는 다시 차 시장을 열고 후난 차를 북서쪽으로 판매하는 것을 허락했다. 차를 둘러싼 전쟁이 벌어질 정도로 안화 흑차의 가치는 컸던 것이다.
명청 시대에 안화는 세계 흑차의 중심지가 되었다. 흑차 생산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차를 만드는 계절이 되면 산시, 광저우, 한커우, 란저우 등지에서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500년 동안 '차 시장이 번성하고 강 양쪽 마을이 빽빽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차 산업이 융성했다.
청나라 말기 좌종당은 안화 흑차에 대해 정부 조달 제도를 시행했다. 중화민국 시대에도 이 제도가 이어져 산시 재정부에서 발행한 차표를 가지고 안화에 가서 흑차를 구입했다.
마왕퇴의 무덤에서 당나라 궁전으로, 칭기즈칸의 말등에 실려 대명왕조의 교역소를 거쳐 좌종당의 신장 원정까지. 안화 흑차는 그렇게 천 년의 시간을 지나왔다. 오래된 향기로 역사의 변천을 증언하며 지금도 그 깊은 맛을 이어가고 있다.
https://youtu.be/LBCdAgf2b4Y?si=-ps0ZFpJpFEm2h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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